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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성지순례 울트라 마라톤 후기
1. 준비하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올해는 유난히 모든 일이 매끄럽지 않았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들까지도 자꾸 어긋났다. 그래서일까. 출발도 하기 전부터, 이번에도 무언가 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생각해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그냥, 간다.
오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짧은 낮잠에 몸을 맡겼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 4시.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대회장으로 향했다.
2. 대회장에서
오후 4시 40분쯤 도착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성당까지, 짧을 줄 알았던 길은 생각보다 멀고도 복잡했다.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잡상인들 사이를 스치고,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를 피해 걸었다. 공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모든 소란을 뚫고, 겨우 명동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익숙한 얼굴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복장을 정비하고, 숨을 고른다. 잠실지부에서 몇 번 마주쳤던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안드레아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고, 짧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제, 시작이다.
3. 전반부 레이스
명동성당을 출발해 인파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는 그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레이스처럼 느껴졌다.
지하 쇼핑로를 지나고, 서소문, 당고개, 새남터를 차례로 지나며 마침내 한강에 닿았다.
그 짧지 않은 구간을 통과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한강 위에 올라서는 순간, 흐름이 갈라졌다.
누가 봐도 강한 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나는 내 호흡에 맞춰, 나만의 리듬으로 몸을 맡겼다.
절두산 성지를 지나고, 양화대교를 건넜다.
해는 점점 기울고, 레이스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4. 중반부 레이스
안양천에 들어서자, 길은 길게 늘어지고 시간은 느려졌다.
지루함과 싸우는 구간이었다.
시계를 보며 페이스를 맞췄다. 6분 30초.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균형이었다.
어느 CP에서는 환영보다는 재촉이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의 온도 차이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다시 달린다.
다음 CP에서는 라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입을 허겁지겁 넘기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입에 넣는다.
안양천을 지나 35km. 또 하나의 쉼.
그리고 다시 움직임.
징검다리를 건너, 수리산으로 향한다.
수암천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몸은 식어가고 있었지만, 차량으로 길을 안내해주던 봉사자들의 목소리가 묘하게 힘이 됐다.
그리고, 산.
이미 40km를 달린 다리는 새로운 움직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엉덩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타오르는 통증이 올라왔다.
내리막에서는 장경인대가 서서히 신호를 보냈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결국 길을 잘못 들었다.
순간적으로 길을 잃고, 흐름을 놓쳤다.
뒤에서 오던 주자가 조용히 방향을 알려줬다.
짧은 고마움.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길 위로 돌아온다.
학의천을 따라, 안양을 벗어나고, 원터골을 지나 하우현 성당에 닿았다.
그곳에서 먹은 김밥은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다. 두 개를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국사봉이다.
어둠 속에서 산을 오른다는 건, 결국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일과 같았다.
시간도, 거리도, 감각도 흐릿해진다.
산 중간, 마리아상 앞에서 잠시 멈췄다.
짧은 기도를 남기고 다시 움직였다.
정상에 닿고, 다시 내려간다.
그리고 판교.
불빛이 보이는 순간, 문명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골성지로 향하는 길은 길고 지루했다.
걷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5. 후반부 레이스
30km가 남았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숫자일 뿐이었다.
다리는 이미 한계를 넘고 있었다.
오른쪽도, 왼쪽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한빛중학교를 지나 손곡천으로 이어지는 길.
나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태평로로 향하는 길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포기할까, 버틸까, 멈출까.
해가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온몸의 고통이 선명해졌다.
덥다.
숨이 막힌다.
죽을 것 같다.
태평의 작은 편의점에서 카페인을 밀어 넣고 다시 움직였다.
성남의 오르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리는 더 이상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내리막에서는 통증이 폭발했다.
그건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를 짓누르는 무게였다.
성남 누비길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손길들이 이어졌다.
물 한 컵, 짧은 응원, 작은 안내.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줬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했다.
6. 골인
남문부터는 절뚝이며 움직였다.
이미 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끝까지 가는 것.
골인 지점을 통과했을 때,
기쁨보다는 공백에 가까운 감정이 남았다.
하루종일 잠도 안자고, 대회운영하시고 자봉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한다.
그들의 정성과 노력이 다 느껴 진다. 너무 고마웠다. 정말 큰 힘이 되었으며 그 응원 덕분에 완주 할 수 있었다. 완전 감사합니다
사진을 찍고, 짐을 찾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택시를 탔다.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7. 마치고
몸은 조용히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왼쪽 발목,
왼쪽 새끼발가락,
오른쪽 엄지,
오른쪽 장경인대.
그리고 오한과 경련.
…그래도, 크게 망가진 건 없었다.
죽진 않았으니. 아마도.
8. 집에 와서
집에 돌아왔다.
불이 켜진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먹을 게 없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휴대폰을 꺼내 쿠팡을 켰다.
그게, 이 긴 하루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아마도 나는 내년에도 성지순례 울트라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주로는 매콤했고, CP는 달콥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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